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78세로 경기도 수원선영에서 영면에 든 가운데 그가 개인 소장하던 미술품 컬렉션인 '이건희 컬렉션'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건희 컬렉션은 이건희 삼성전자 전 회장이 사망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일가에서 국가에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 23,000점을 일컫는데요,
단순 규모만으로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문화재, 미술품 국가기증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이 회장의 컬렉션이 미술사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매우 큰 가치를 지닌 만큼, 그 컬렉션의 면모와 기증 전시 면에서 미술계에 전례없는 여파를 불러일으키며 "세기의 기증"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건희 전회장의 높은 퀄리티의 컬렉션에 홍라희 전 삼성 미술관 리움 관장의 역할도 새삼 회자가 되고 있습니다.
홍라희 전 관장은 삼성 미술관을 역임하기까지 시아버지 이병철에게 특이한 시집살이를 당했다고 합니다.
홍라희 전 관장은 이건희 회장의 영결식에서도 많이 울었던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딸 이부진의 부축에 영결식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남편 곁에서 평생 조력자 역할을 하며 3명의 자녀를 길러낸 홍라희는 45년생으로 이건희 회장보다 3살이 어리다고합니다.
둘은 1966년, 홍라희는 모친을 모시고 일본에 방문하였고 이건희는 미국 유학생활 도중 잠시 일본에 머물고 있던 때 처음 만났다고하는데요,
알고보니 이미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은 홍라희 여사를 셋째 아들 이건희의 배필로 점찍어 놓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본에서 처음 만난 둘은 보자마자 서로 사랑에 빠져 1967년 결혼식을 올리게되었는데요,
사실 처음 이건희의 모친은 홍라희를 탐탁지않게 여겼다고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164cm의 작은 키인 아들 이건희보다 키가 큰 홍라희때문에 아들이 위축되진 않을까 걱정되서라고 합니다.
한편 결혼 후 시아버지인 이병철은 홍라희에게 특이한 미션을 주었는데요, 매일 인사동에 가서 10만원 한도의 마음에 드는 골동품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당시 시아버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홍라희는 시키는대로 묵묵히 민화, 토기, 자기 같은 소품들을 사갔다고 하는데요,
세 달쯤 지나자 집안은 온통 골동품 천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광경을 본 이병철은 그제서야 "이제 됐다"고 말했다고하는데요, 알고보니 이병철은 자신이 새로 세울 호암 미술관에 며느리를 관장으로 취업시키기 위한 그의 큰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며느리의 미술품 보는 안목을 테스트하기 위한 그의 미션이었던 것입니다.
홍라희는 시아버지의 뜻대로 1995년 호암 미술관의 관장으로 취임해서 2004년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하면서 리움 관장으로도 취임하였습니다.
서울미대를 나온 그녀는 미술에 대한 애정이 컸다고하는데요, 한국 미술가들을 안팎으로 돌보아 준 미술인들의 후원자이기도 했습니다.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대표적인 인물로 단연 홍라희 여사로 꼽을 정도라고합니다.
그녀의 시아버지 역시 아들 이건희에게 문화는 100년이 넘게 가꾸어야한다는 사상을 가르쳤는데요,
삼성가는 실제로 100년에 가까운 시대동안 미술과 문화발전을 일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삼성가의 이러한 노력은 이건희 전 회장의 미술품 기부로 '세기의 기증'이라는 평을 들으며 정점을 찍었는데요,
이건희 컬렉션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중섭 작가부터 샤갈, 피카소, 모네, 살바도르 달리 등의 유명 작가의 작품이 포함되었습니다.
올해는 이건희 회장이 오랫동안 일궈놓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30주년이라고 하는데요,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이재용회장과 함께 자리를 빛냈고, "회장님이 보셨으면 더 좋아하셨을 거다. 생전에 굉장히 노력했고 지원에 대해 정말 관심이 많았던 부분이라 지금 30주년이 굉장히 감명 깊었을 거다"'라고 했다"고 "그리움을 전했습니다.